겸손해지기 전에 탁월해진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지혜롭다면 우리는 지위를 구하기 전에 겸손을 구할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역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권위 안에서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은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우리는 오직 왕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정도만큼의 참된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진정한 영적 권위는 지위가 아니다. 그것은 은혜이다. 거짓된 영적 권위는 은혜 대신에 지위 위에 서게 된다. 가장 높으신 영적 권위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던지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같은 일을 하도록 명하셨다.
거짓 선지자들과 진정한 선지자들 사이에는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구별되는 요인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은사와 사람들을 자신들을 위해 이용한다. 진정한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은사를 사용하고 자신을 헌신한다.
자기추구, 자기를 높임, 그리고 자기보존은 진정한 사역에 가장 파괴적인 세력이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으심을 받았을지라도 사울 왕처럼 이러한 세력들이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면 우리는 마법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종교의 영은 항상 우리의 두려움과 교만을 더 크게 키울 것이지만, 참된 영적 성숙은 우리의 겸손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이러한 겸손하게 되는 과정이 바울 사도의 삶에서 놀랍게 나타나고 있다.
주후 56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원래의 사도들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 "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갈 2:6) 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이 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 자신도 가지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정도 지난 후에 기록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 (고전15:9) 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다.
AD 61년경에 기록된 에베소서에서 그는 자신을 보고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보다 더 작은 나" (엡 3:8)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대략 AD 65년경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은 "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딤후1:15)라고 자신을 부르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덧붙이고
있음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진정한 계시는 종교의 영을 무력케 하는 강력한 해독제이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자신의 초기 사역 몇 년 동안은 교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되지 못했음이 자신의 이러한 언급들로부터 분명해 진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이 두 가지로부터 자유케 되었다고 선언 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은혜 안에서 희망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겸손하게 될 것이다.
젊은 사도들은 자신들의 언행들로부터 많은 교만이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진정한 사도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열쇠는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에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계시, 우리의 위임 또는 우리의 성취들로 인해 과대하게 부풀어올라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은혜와 겸손 가운데 성장해가고 있는가?
마지막 날들에 전개될 웅장한 영적 전쟁들中에서 / 릭 조이너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지혜롭다면 우리는 지위를 구하기 전에 겸손을 구할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역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권위 안에서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은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우리는 오직 왕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정도만큼의 참된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진정한 영적 권위는 지위가 아니다. 그것은 은혜이다. 거짓된 영적 권위는 은혜 대신에 지위 위에 서게 된다. 가장 높으신 영적 권위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던지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같은 일을 하도록 명하셨다.
거짓 선지자들과 진정한 선지자들 사이에는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구별되는 요인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은사와 사람들을 자신들을 위해 이용한다. 진정한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은사를 사용하고 자신을 헌신한다.
자기추구, 자기를 높임, 그리고 자기보존은 진정한 사역에 가장 파괴적인 세력이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으심을 받았을지라도 사울 왕처럼 이러한 세력들이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면 우리는 마법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종교의 영은 항상 우리의 두려움과 교만을 더 크게 키울 것이지만, 참된 영적 성숙은 우리의 겸손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이러한 겸손하게 되는 과정이 바울 사도의 삶에서 놀랍게 나타나고 있다.
주후 56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원래의 사도들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 "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갈 2:6) 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이 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 자신도 가지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정도 지난 후에 기록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 (고전15:9) 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다.
AD 61년경에 기록된 에베소서에서 그는 자신을 보고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보다 더 작은 나" (엡 3:8)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대략 AD 65년경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은 "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딤후1:15)라고 자신을 부르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덧붙이고
있음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진정한 계시는 종교의 영을 무력케 하는 강력한 해독제이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자신의 초기 사역 몇 년 동안은 교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되지 못했음이 자신의 이러한 언급들로부터 분명해 진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이 두 가지로부터 자유케 되었다고 선언 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은혜 안에서 희망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겸손하게 될 것이다.
젊은 사도들은 자신들의 언행들로부터 많은 교만이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진정한 사도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열쇠는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에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계시, 우리의 위임 또는 우리의 성취들로 인해 과대하게 부풀어올라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은혜와 겸손 가운데 성장해가고 있는가?
마지막 날들에 전개될 웅장한 영적 전쟁들中에서 / 릭 조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