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위해 성경을 찾아간다면 그는 거기서 기뻐할 것이다 <A.W. 토져>

by 박원옥 posted Jan 03,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style type="text/css">.bbs_contents p{margin:0px;}</style>
  <style type="text/css">.bbs_contents p{margin:0px;}</style>

수용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합적인 것으로 영 안에 있는 몇 가지 요소의 혼합이다.

수용성은 어떤 것을 향한 친근성이며, 어떤 것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요, 어떤 것에 대한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이요, 어떤 것을 갖고자 하는 갈망이다.

이것을 보면 수용성은 개인에 따라 많거나 적거나 혹은 거의 없거나 정도가 다르게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연습에 의해 커질수도 있고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없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위로부터 엄습해 오는 주권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실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이 주어진 목적을 알고자 할진대 다른 선물과 마찬가지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져야 하며 개발되어져야 한다.

이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 현대 복음주의의 매우 심각한 붕괴 원인이다.

 개발과 훈련이라는 개념은 옛 성도들에게는 매우 귀한 것이었으나, 현재 우리의 전적인 종교적 영상에서는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너무 느리고 너무 비속한 것이다.

우리는 현재 마력과 같은 신속하고 극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누름 단추와 자동 기계들 사이에서 자라난 그리스도인 세대는 목표 달성에 있어 좀 느리고 좀 덜 직접적인 방법을 참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기계적 방법을 적용하려 애쓰고 있다.

우리는 성경 한장을 읽고 짧은 경건의 시간을 가진 후 뛰어나가 버리면서, 다른 복음 집회에 참석하거나 최근 먼 곳에서 돌아온 종교 모험가의 감격적인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우리의 깊은 내적 파산이 메꾸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같은 정신의 비참한 결과들이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피상적인 삶, 텅 빈 종교적 철학, 압도적인 흥미 본위의 복음 집회, 사람의 영광을 구함, 종교적 형식주의에 대한 신뢰, 사이비 종교 단체, 외판원식 방법들, 활동적인 성격을 성령의 능력으로 오인하는 것들은 악한 질병, 영혼의 깊고 심각한 질병의 증상들이다.

우리에게 닥쳐온 이 크나큰 질병의 책임은 어느 한 사람에게 있지 않으며, 또한 비난을 완전히 면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 비참한 상황의 원인이 되고 있다.

너무 눈이 어두워 보지를 못하거나, 너무 겁을 내서 말을 못하거나, 혹은 너무도 자만에 빠져서 다른 이들이 만족해 하는 듯한 초라한 보통식(普通食)보다 더 나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해 본다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생활을 본따며 서로의 경험을 우리 자신이 따를 모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세대 동안 이 추세는 점점 더 하락해 왔다.

이제 우리는 말라 타 버린 잡초뿐인 낮은 모래땅에 이르렀으며, 무엇보다 비참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우리의 경험에다 뚜드려 맞추고, 이 낮은 땅을 복된 자들의 초장인양 받아들인 것이다.

현세대의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 성경의 방법으로 되돌아 가는 데는 단호한 마음과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도 이따금 이 일을 해내야 했다.

역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 이루어진 몇몇 대규모의 복귀 운동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구하는 평범한 남녀들을 위해 무엇을 하실지에 대해서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누구든지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라.

그로 하여금 거룩함에 관해 자기 훈련을 시작하게 하라.

신뢰와 순종과 겸손을 가지고 영적 수용력의 능력 개발을 노력해 보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메마르고 연약했던 나날들 가운데 그가 바랄 수 있었던 것을 능가하는 결과들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진지하게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써 그 때까지 그를 가두었던 틀을 깨고 나와, 자기의 영적 기준을 위해 성경을 찾아간다면, 그는 거기서 발견하는 것으로 기뻐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 보자.

 

우주적 임재는 하나의 사실이다.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

 전 우주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생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생소하고 낯선 하나님이 아니시며, 수천년 동안 죄 많은 인류를 품으신 사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친한 아버지이시다.

또한 항상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우리와 교제하시고자 애쓰고 계시다.

우리가 그의 제의에 반응하기만 한다면 그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우리안에 갖고 있다.

믿음과 사랑과 행함에 의해 우리의 수용성이 더욱 완전해질 때, 우리가 그를 아는 정도는 증가될 것이다.

 

 


Articles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