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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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고수를 위한 현시대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차이 - 폴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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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진리를 고수하셨을 뿐 아니라 진리를 위해 대담하게 자신의 명성에 가해질 위험을 무릅쓰셨다.

정의를 지키려는 예수님의 대담성과 헌신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비타협적이고 엄격한 것이었다.

안식일날 회당에서 예배를 마친 예수님께서 유명한 바리새인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드러난 이런 대담성을 잘 살펴보라.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대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대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7-11).

 각 사회마다 사람들이 등급을 정해두고 있다.

여기서 또 한번 예수님은 그 사회의 문화적 규범을 뒤엎으셨다.

어느 집에 초대되어 가게 되었을 때 그 집에서 무언가 옳지 않은 것을 보게 될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보통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들이나 남편 또는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교만과 거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그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잔치 자리의 상석에 앉게 된다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말석에 앉아 있다면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거만한 자태를 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잔치에 초대된 명예로운 손님들처럼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그리고 그 사람들 때문에 위축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명성 뒤에 숨어있는 대신 모인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명성에 가해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셨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 것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권세를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하셨다.


그리고 거기서 끝내지 않으셨다. 손님을 초청한 주인에게 사람들을 잘못 초대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눅 14:12~14).

 

  예수님의 솔직함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덕행의 두 가지 기준을 보여 주신다.

 

첫째, 힘과 권력을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행동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둘때,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지 말라.

자신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은밀하게 가장한 행동일 수도 있다.

전혀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이야기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는지가 진정한 친절을 가늠해 주는 기준이 된다.

  잔치 자리에서 가장 재미없는 사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찾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주목해 보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드러내지 않고 베푸는 사랑의 행동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

 

순수한 사랑은 일반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팔일 째 되던 날 요셉과 마리아는 유대인의 율법책인 토라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다.

 

노인 시므온이 그들을 맞이한 다음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그 아기가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낼'(눅 2:35)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의 생각을 드러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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